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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펜젤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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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의 개척자-아펜젤러 선교사


#. 우연하지 않은 한국 선교의 결심

태어날 때부터 아펜젤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1858년 2월 6일 펜실베이니아 소더톤에서 독실한 신자이셨던 부모님 아래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펜젤러는 메노나이트 출신의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심과 복음주의 신앙의 가정환경에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은 물론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까지 줄줄 암송할 만큼 대단한 신앙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872년 임마누엘 개혁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전형적인 장로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펜젤러의 인생을 전환시킨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무려 3년 동안이나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옮기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감리교로 이적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 일은 아펜젤러가 18세의 나이에 뚜렷한 회심을 경험하고 나서, 그의 신앙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 아펜젤러 선교사
그는 이제 선교사로서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1882년 무수한 인재를 배출한, 랭카스터의 개혁교회가 운영했던 프랭클린 마샬 대학을 졸업하고, 동부의 명문 드루신학교에서 신학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1883년 그가 신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참석하게 되었던 '신학교 연맹대회'는 그의 가슴을 선교에 대한 비전으로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회를 통해 장차 한국 선교의 열렬한 동반자가 되는 언더우드와의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펜젤러가 원래 선교사로 지망했던 곳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선교를 지망했던 친구 워즈워드가 어머니의 중병으로 한국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언더우드의 만남을 통하여 한국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한국 선교를 향한 결단을 내리고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 아름다운 순교의 사람

188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북감리교 파울러 감독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아펜젤러는 곧장 한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갓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와 스트랜톤 선교사 가족과 함께 출항하여 2월 27일 일본의 요코하마 항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아펜젤러 일행은 맥클레이 선교사 자택에서 열린 '제1회 한국선교사회의'에 참석하게 됩니다. 바로 이 회의가 감리교 한국선교회에 정식으로 조직됨으로써 향후 한국선교의 장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머무는 동안 아펜젤러는 틈나는 대로 한국어를 습득하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한국선교를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 땅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났으며, 1885년 4월 5일 부활 주일 오후 3시에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아펜젤러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선교지를 밟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갑신정변으로 인해 혼란에 휩싸였던 한국 땅에서 미국 공사 폴크는 아펜젤러 부부에게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선교지에 첫 발을 내딛은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아펜젤러 부부는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일본에 2개월 동안을 머물며 기회를 엿보다가 국내정치가 안정된 6월 16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막힌 줄만 알았던 한국선교의 문은 그때부터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선교 사역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더불어 눈부신 열매와 업적들을 한국 땅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정동에 자리잡은 아펜젤러 선교사는 8월 3일 두 학생과 함께 영어 학교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학교 설립과 신학교육, 연합선교, 성경번역 그리고 문서 선교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사역을 이루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정동제일감리교회와 배재학당의 설립 그리고 한글성경의 번역은 그가 남긴 가장 값진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1902년 아펜젤러는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목포로 가는 배에 승선했다가 다른 배와 충돌하는 바람에 4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동승했던 한국인 비서와 어린 한국 소녀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자기 목숨은 돌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한국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고 떠난 선교사였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17년의 세월을 불꽃같이 살다가 떠났지만, 그의 선교의 열매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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